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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때의 우리 나이를 생각하면서 김종필의 대단한 지적, 정치적, 능력을 비교 해 보면서 김대중에게 속은 김종필을 생각 해 본다.**** JP 말, 3김정치의 언어[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김종필(JP)의 기억력은 녹슬지 않았다. 목소리 기력도 떨어지지 않았다. 격정을 드러낼 때 허스키한 음성은 그대로다. 그는 40분쯤 말했다.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이겨낸 뇌졸중의 후유증이다.
10일 국회헌정기념관, 운정(雲庭)회 창립총회
장면이다. 흰 구름 정원은 아늑하다. 바람이 거세면 먹구름이다. 풍운(風雲)은 파란과 곡절이다. 풍운은 JP의 정치적 서사(敍事)다.
그 삶은 성취와 좌절의 반복이다. 운정회 회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3김 시대가 있었고, 운정 선생을 빼놓고 현대사는 기록할 수 없다”고 했다. 행동을 삼가고 인간다운 도리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거다. 물정을 알게 된 때부터 그 가르침을 어긴 적이 없다”-. 그의 언어 운용 방식은 여전했다. 고사성어, 감성적 비유,
정치 비사의 은근한 회상, 세상 이치의
주입. 적재적소의 말은 상황을 선점하게 한다. 3김은 언어의 효용과 위력을 터득했다. 김영삼(YS) 언어는 직설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민주화 의지 표출이다. 그의 비유는 대체로 거칠고 둔탁했다. 하지만 명쾌한 직설은 복잡하게 얽힌 사안을 단숨에 정리한다. 타이밍 갖춘 간결한 말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평정한다. 언어의
간결성이 갖는 묘미다. 그가 꼽은 정치인 자질이다. 그의 말들은 논리의 여러 단계를 거친다. 그 속에 복선이 깔렸다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말했듯 “기질 같은 완벽주의” 때문이다. 그 방식의 설득력은 정연하다. 그의 화폭에 담긴 풍경화들로 꾸몄다. 표지에 이런 글귀가 있다. “화심(畵心)… 순리를 거르지 않는 천심.” 언뜻 그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 JP는 천하를 뒤집은 거사의 주역 아닌가. 그 후 그는 달라졌다. 그는 순리의 정치를 찾았다. 순리의 언어는 극단을 배격한다. 그는 시적
정취를 넣으려 했다. 그때 그가 쓰던 어휘다. 그 말은 1인자의 심기를 거세게 건드리지 않는다. 권력 2인자의 자존심을 지켜준다. 그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다. 정계 은퇴 뒤 포착한 어휘다. ‘허업’은 넘치는 회한이다. 하지만 경지에 오른 정치 9단의 용어다. JP의 정치는 허업이 아니다. 실업(實業)의 경제를 뒷받침했다. “요샛말로, 민주주의와 자유도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으면,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유지될 수 없다. 5·16 직후 박정희 대통령께서 정확한 정치 노선을 정립했다”-. 그것은 ‘선(先) 산업화→ 후(後) 민주화’의 국가개조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 그 반대(선
민주화) 순서로 나간 다른 후진국들은 실패했다. 하 지만 그들은 “가능성의 예술로 정치”를 추구했다. 그들은 상대편을 허접하게 자극하지 않았다. 어설픈 말싸움을 경계했다. 3김은 침묵을 활용했다. 그것은 소모적 정쟁을 잠재운다. JP의 소이부답(笑而不答·미소 짓고 답하지 않는다)은 절제의
언어다. 그런 말투는 대중의 열정을 동원하지 못한다. 황우여 대표는 자주 웃는다. 그 웃음에 얹힌 말들은 공허하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말의 속성이다. 김한길
대표는 결의를 자주 드러낸다. 그 표정은 강렬하지 못하다. 그런 말투도 정치 불신을 깊게 한다. 정치는
선택이다. 정치는 새롭게 재생해야 한다. 정치언어의
순화와 정비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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